2008년 3월 4일 화요일

마지막 여정...

에필로그 운장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인류학에 문외한 학생으로 수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좀 느리더라도 책 작업을 하며 방학을 이용해
짧은 자발적 보충 수업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촌 시대 문화 인류학 수업 내내,
수업 전반적인 내용을 엮어서 이해하기 보다는
수업의 한 구석에서 13명이 이뤄내는
소모임의 하모니가 즐거웠던 한 학기였다.
군대에서 삭막한 인간관계에 한계를 느낀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군대를 전역한 시점의 작은 소모임은 매우 즐거운 공간이었다.

즉 수업 내내 아날로그를 생각하다라는 팀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지,
수업 내용을 받아 들이는데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나이까지도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인류학에 문외한이었다.
놀랐던 것은 수업 전체의 커리큘럼은 도외시 하고
수업 시간 귀동냥과 팀 프로젝트 토론에만 관심 있었는데도,
그 가치와 그런 이야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시던
따뜻한 조한 선생님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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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생각하는 아날로그에 대한 생각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각자의 특색이 들어 날 수 있게 발표를 했던
우리를 많이 칭찬해 주셨던 것 같다.
우리의 허접한 아날로그 활동 일지라는 출판물을 보고,
매우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수업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며,
수업의 귀퉁이에서 소모임원들을 통해
배우는 배움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인정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풍성한 수업, 배울 것이 많지만,                                                 [조한혜
학생에게는 배울 수 있는 방향, 방법이 많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수업을 마쳤는데도, 그 수업을 정리하면서
한번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 여정에 함께 하게 되었고,
다시 공부한 지시문 수업은 매우 배울 것이 많았다.


줄임말이 익숙한 나도 지시문이 편하다.
긴것보다는 짧고 제대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
윗 세대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아닐까?
그렇게 짧고, 빠른것이 익숙한 나에게 책 만들기의 과정은
쉽지 않은 재수강이었다.
처음 그 시작은 매우 즐겁고, 북적거리는 출발이었지만
조금씩 주변의 복잡한 일상사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항상 머리에 담아두고 오랫동안 고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힘든 과정에 몇몇 친구들은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고,
몇몇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이 옆에서 즐거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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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놓아도 되는 일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작업을 하지 않았던 그
때에 책 작업이 멈춰지고, 취소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던 때에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나갔고,
지금 조한, 유이, 아성, 영화, 연지, 운장이 있는 듯 하다.
결자해지. 어떤 공간의 사훈
社訓이기도 하며,
어떤 사이트의 규칙이기도 하다.
왠지 책임감 없어 보이고,
늦게 모임에 오는 세대이며 뒤늦은 듯 해 보이지만
결자해지해서 매우 뿌듯하다.
어설프지 않은 조금은 제대로 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어서 더욱 즐겁다.

모여서 책 편집 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일상사를 풀어 놓고,
서로 연애 상담과 삶을 고민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펼쳤다.
인생을 몇 년 더 살았다는 이유로 아성과 난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06학번 친구들의
다양한 멘토가 되어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의 연애 상담이
얼마나 도움이 된지는 모르지만
함께 밤을 지새며 이야기 해주었던 창이론
조금이나마 그들의 연애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떤 친구는 정말 여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그의 연애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던 만큼만 연애에 집중한다면
누구 못지 않은 훌륭한 연애상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멘토를 해주었던 작업 팀원들은
사실 나의 멘토가 되어 주기도 했다.
자신이 전문적으로 아는 영역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기도 했으며,
아무런 관련 없는 자리에 데리고 가도
내가 하는 회의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던져 주기도 했고,
필요한 인터뷰 대상이 되어 주기도 했고,
다른 영역의 팀원이 되어 다른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시켜 나가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연애 상담을 해준만큼
나 또한 팀원들에게 많이 빚졌다.
서로 돌봐주는 과정을 서로 빚졌기 때문에
나중에 만나더라도 더 깊이 돌봐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또한 더욱 깊어간다.
제대로 멋진 작업자들을 만났기에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꼬시고 싶다.
누구보다 멋진 녀석들...


책 작업이란 것이 다 그렇겠지만
혼자서 책을 써가는 과정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혼자서 책을 쓴 경험도 없었지만,
내 목소리를 죽이는 연습과 회의,
그리고 쓰기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 우선 힘들었다.
또한 팀원을 모두 배려하고,
서로가 쓰고 있는 장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던 글쓰기였다.
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께 아이디어는 좋지만,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제대로 써내지 못합니다.”라고 핀잔을 먹고,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 나도 함께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함께 책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즐겁다.

사주팔자에 책으로 먹고 살 팔자는 아니라고 했으니,
그런 운세를 타고난 사람들과 함께
좋은 작업에 참여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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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내에
우리는 쪽글을 바탕으로 한 1차 원고를 완성 했었다.
하지만 매우 지루한 수준이라는 평에
2007
년 여름 조금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여학생을 화자를 잡았으며,
모두들 여성화자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수업을 재구성 해야 했다.
당연히 그때 1학년 여학생이었던 영화와 연지가 부러웠다.
사실 따라갈 수 없는 감수성과 느낌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 하니까
방학과 2007 2학기를 거치면서 힘든 작업을 이겨냈다.
자신의 할 일들은 일대로 진행하며,
학기 중에도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소신있게 잘 쓴 글들이 퇴고 되고,
글 전체의 흐름을 위해 지워지고, 잘려가며
새롭게 추가되는 과정은 좀
더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다른 자리에 남겨 높고 싶다.

 

조한이 프롤로그를 시처럼 읽기 좋게 쓴
40장 가량을 줄글로 편집했으나,
연지는 시 같은 초기 글이 읽기 좋다고 투덜거린다.
아성은 자신이 쓴 4장이 다시 읽어보니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 생각에 매우 잘 쓴 글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전화하고, 이야기하느라
원고는 뒷전인 것 같지만 가장 많은 작업을 한 실력자이며,
연애인 이야기를 해주며 하루 저녁이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영화는 참 설득력있는 말투의 소유자이다.
각자의 생활방식과 글쓰는 방식을 존중하면서,
서로서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은
순간 순간 짧지만 오래 방영되는 시트콤 같다.
난 좀 이 착한 친구들의 등을 너무 밀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조한의 말을 잘못 전달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예전에 잘라 보낸 버전의 도입부가
갑자기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군대에서 신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한솔이 생각난다.
이 즐거운 자발적 재수강을 하면서,
기획자로서의 일머리를 좀 더 키운 것 같아서 즐겁다.
그 기획이란 아마도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기획이기 보다는
돈이든, 즐거움이든, 뿌듯함이든
즐거워할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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