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8일 목요일

[퍼온글] 한예종사태...작은 사실은 전체를 보게끔 하는 프리즘

안녕하세요. 이 정현입니다.

   갑작스레 이메일을 드리게 되었네요.

 

   제가 용기내어 메일을 띄우게 된 이유는, 제가 아는, 그리고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4학년입니다.

 

7개월만 지나면 저는 이 학교를 떠납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며칠 째 울고 있습니다.

떠나려는 마당에 갑자기 눈물만 쏟는 이유는 떠남이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학교가, 외부의 압력으로 곧 없어져 버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정치적 이념 차이에 따른 무분별한 탄압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이 극단의 사태가

정치권 내부 뿐 아니라, 예술과 교육의 현장에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픕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문화부 산하에 있는 국립 대학교입니다.

지난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한예종에는 유래 없는 국정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인 5월 19일에, 황지우 총장님이 자진사퇴를 하셨습니다.

(관련기사 1.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55770.html)

 

누군가는 현 정부에 대한 좌파 문인의 반항이라고 하였고,

누군가는 현 정부의 문화계인사 물갈이가 끝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5월 19일 밤,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된 황지우 총장님께서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감사 노래를 불러드리는 어린 제자들을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지 불과 4일 뒤, 기자회견 이후 자진 사퇴를 하신 지 이틀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속고 있던 기분이었습니다.

 

작년부터 주요 신문 사설에 ‘한예종, 좌파교육의 온상’ 이니 ‘한예종 개편이 곧 한국예술교육의 혁신’ 등의 기사가

나올 때부터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눈치 챘어야 했습니다.

 

작년 8월에 문화미래포럼 -문화계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축된 전국 예술대학 교수들의 모임. 대표 : 성균관대 연기

 예술학과 정진수 명예교수(64)- 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동국대 정재형 교수는 한예종의 축소 개편안을 개인적인

잣대에 비추어 발제했고, 내용의 골자는 한예종 6개원을 분할, 폐지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낱 농담 같던 계획들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2.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21030010)

(관련기사 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21809195&code=940401 )

 

아직도 ‘서사창작과 없어진다던데, 극작과는 괜찮지?’ 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무지함이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합니다.

그런 물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화부 측에서 언론에 표명하고 있는 입장은,

서사창작과 - U-AT 통합과정 폐지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계획은 한예종 축소/개편안의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합니다.

 

그립습니다.

학교 식당밥을 먹으며 반찬투정 하던 지난날이,

수업에 지각을 하게 될까 정문부터 뛰던 나날들이,

학교 앞 울랄라 빈대떡에서 막걸리 마시던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의 사치로만 느껴집니다.

 

이 것은 비단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곧 졸업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실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의’ 이니 ‘진실’ 이니 하는 유치한 단어 앞에서 울고만 있는, 무력한 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 메일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주윗 분들에게 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조언이나 도움 주시고 싶은 분은, yavoxya@naver.com 으로 메일 주세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실하게 부탁해본 일은 없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05학번 이정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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