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2일 화요일

레모니 스니켓 위험한 대결

1권을 읽는데 15분이 채 안 걸린 듯 하다. 굵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우 만족할만한 분량이다. 최근 들어 더더욱 느끼는 것이지만, 장편 소설을 쓰고 싶더라도 반듯이 읽기 편할 분량으로 잘라서 출판하며, 싸게 판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굵은 책을 읽으려면 너무나 힘들다. 읽기 불편하기 보다 읽다 지쳐서, 아예 열어보질 않게 된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져서 그런가짧은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레모니 스니켓을 추천한 사람은 우석훈씨이다. 그의 최근 나온 책들과 연결해서 읽어본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나마 하고 있었다. 책은 현재 영문판 13권이 최종본으로 나와 있고, 번역은 5권까지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 편집하고 있는 책에서 한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난 희망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에 대한 설명으로 참 어려운 일을 겪으셨군요라고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레모니 스니켓의 바이올렛과 클로스, 그리고 서니에게 던질 수 있는 말과는 조금 다른 성격임을 보여준다. 세 남매는 (현재 2권을 읽고 있지만) 끊임없이 불행한 이야기들로 13권의 책을 채워 나가겠지만, 이들은 희망을 전제한 채로 불행을 맛보고, 희망이 조금씩 깨져나가는 것이다. 이미 희망을 품고 사는 아이들이다. 그들 보다 조금 더 자란 20살 대학생은 세 남매가 겪은 힘든 사연을 바탕으로 희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세상 한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희망이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정도의 절망적 상황을 느낀 적이 없기에, 도전과 반성 정도의 긍정적인 변화를 꿈꾼 적은 있지만 희망이라는 목적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석훈씨가 읽어보라고 했던 맥락은 위와 같은 것이었을까? 절망의 경험 없이 매우 나이브한 인생을 살아온 우리가 레모니 스니켓의 책이라도 읽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절망의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금씩 궁금해 지긴 한다. 하지만 분명히 앞의 대학교 1학년 학생의 희망에 대한 생각과 세 남매의 희망에 대한 생각은 분명 좀 다른 것으로 이해 된다. 그리고 13권까지 세 남매의 희망이 어디까지 부셔질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픽션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 책은 어쩌면 매 앞에 나온 서문이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비어트리스! 내 사랑, 내 그리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내 사랑, 내 그리움, 땅속에 고이 잠든...... For beatrice - My love for you shall live forever, You, however, did not.
링크 되어 있는 곳은 학습 생태계에서 하는 "밑줄 긋기" 라는 것인데, 책과 관련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될듯하다. 비어트리스는 독어로 읽으면 베아트리체라고 읽을 텐데, 이는 그 유명한 단테의 베아트리체가 아닌가? 약간은 심리학적인 아집이지만, 그가 어떤 사진 속에도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괴짜 작가라고 쓰여 있는데,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 베이트리체로 부터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썼을지 모른다. '죽음으로 부터의 회기'를 이야기하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은 삶을 실존적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큰 경험인지 모르겠다. 나는 죽음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가장 큰 삶을 느꼈는데, 레모니 스니켓이 사랑하는 사람을 읽고 괴짜가 된 것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쭈욱 읽어볼만 할 듯하다. 읽는 내내 그렇게 우울하거나 절망적이진 않았는데, 적어도 10권까지 읽을 용기는 생기지 않을까? 원래 호러와 서스펜서를 좋아해서 1권의 절망은 그러저러 하다.


 

집중을 한 나머지 잠이 불규칙 적이다. 자고 싶을 때는 잠이 오지 않고, 자기 싫을 때는 잠에 들어버렸다가 아무도 깨어있지 않는 새벽 3시쯤 일어나게 된다. 휴우.. 또 눈이 내리네,,, 오늘 블로그를 편집하면서,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듯 하다. 블로그는 어떤 점에서 글의 퇴고 방식을 배우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한번 잘 써서 보여주는 것 보다는 계속 완성되어 가는 글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느껴진다. 이런 글과 블로깅이 모두들 절망적으로 느끼는 상황 속에서 혼자 유유자적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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