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6일 화요일

09-08-28 얘너나 유스나루 마지막

After 얘너나


  이날은 마지막 자리를 기획할 때부터 미리 논의 되고 있던 것은 애프터 얘너나란 것이다. 이들이 살면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일시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가깝다. 그들의 개인성격문제, 집안문제, 학교문제는 프로그램의 권한 밖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혹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친절한 복지사, 혹은 대안학교 선생님의 입장으로 다가가는 것은 어쩌면 좋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 또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연락하면 언제든 밥 한번 사줄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알바 자리들을 연결해 준다고 이야기했다. 알바 영역은 아주 쉽게 던진 문제였는데,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분당에서는 승희, 정윤이, 종현이 세 사람이 알바자리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 사이에 개똥이도 마지막으로 편지를 태우던 운동장에서 자신도 알바자리가 필요하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예전에 양다랑 같이 여훈 그리고 재원이에게 일회용 카메라 찍은 내용을 가지고 영상 기획을 잡아보자며, 재원이한테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재원이가 일하던 곳은 피자나라 치킨공주였고, 그 날 저녁 배달 일을 하고, 몇 만원을 받아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의 평일동안 하는 일은 PC방에서 밤을 샌다. 재원이가 살고 있는 시간은 밤이고, 낮은 없다. 해가 떨어질 무렵 자기를 깨웠던 프로그램은 얘너나 였고, 3개월 동안 그는 프로그램에 나오기 위해서 금요일 아침에 잠을 자지 않는 선택을 했다. 10대가 돈을 버는 일은 얘너나 와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란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악순환 고리를 우선 몸으로 이해하고 그걸 끊어줘야 한다. 거기에는 오토바이나 PC방 같은 놀이 꺼리들에 대한 이해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현재의 벌이보다는 괜찮아서 동기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할 듯 하다. 나 또한 애프터 얘너나 프로그램으로써 확실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내가 꺼낸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이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게 무의미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획팀에서 나왔던 “그냥 개고생 했다”는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유서쓰기


프로그램에 대한 마지막 감상과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 회의에 뒷부분을 얘기하고 나서, 앞에 글쓰기 프로그램은 세 명이서 볼북복으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그냥 걸린 사람이 큐시트 쓰기라는 것은 기획팀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짧은 50분의 기획, 그리고 흐름을 잃어서 완성되지 못한 자서전을 포기하는 느낌까지 들었고, 심지어는 영상을 맡고 있는 이삭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는 모습은 사실 뭐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허탈한 모습이었다. 그 때까지 이미 회의에서 만들어진 모든 과정을 큐시트만 이삭이 쓰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삭에게 모든 것을 마꼈으니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생각한다. 그날 큐시트가 늦게 올라와서 앞에는 도저히 뭘 진행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오후에 도착했는데, 앞부분에 뭘 하는지는 그날 회의에 있었던 양다나 밤비나 모두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왔던 금자가 더 애타하는 것 같았다


우당 탕탕한 과정인데 얘너나를 진행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1. 자동차 후진을 할 때 좌우 싸이드 미러와 빽미러로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사각지대에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기본 뒷받침들이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나 멘토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이 학습과정을 도와야 하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돈을 벌고 싶거나 기초생활이 어려운 경우 이들을 도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교육과 복지의 혜택은 국민의 의무로만 책임 지워지는게 아니라 그들이 의무로 받아들이고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시스템을 공무원들은 만들고 있지 않다.


2. 이전까지 진행해오던 아이 돌보기와 관심을 주는 방식은 절대 아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현실을 알게 해주고, 비슷한 상황이어도 열심히 살고, 자기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지든 자생력이든 생겨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프로그램 중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멘토들은 그런 방식으로 더욱 강해져야 한다. 같은 또래여도, 자신은 멘토 혹은 기획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마쳐가면서 참가자가 얻어가는 것은 멘토 한명의 전화번호 보다는 그들 자신을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3. 이 프로그램은 처음 초기 기획팀의 아이디어와 함께 1기 얘너나 기획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10대가 만들었고, 다른 세대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 20대인 나와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도왔고, 더 나이 많은 기관 운영자들이 붙어있었다. 같은 문제를 대하고 있으면서 푸는 방법을 십대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다른 가치를 갖는다. 요즘 많이 떠들어 대는 2.0스러운 것이다. 문제의 발생지에서부터 문제를 풀려고 했다는 점이다. 문제들이 만들어지는 10대의 눈으로 풀려고 했고, 그 이야기를 가지고 다른 세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비록 기관들은 보고서와 설문의 형태로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소화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언어로 재해석 해줘야 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처음 매뉴얼을 만들자는 것도 어른의 언어로 어른을 설득시켜 보자는 기본적인 기획의도가 있었으므로, 불평할 것은 아니다.


4. 얘너나 프로그램을 즐거워하던 참가자들은 강하고 능력있는 10대들이다. 에너지가 넘쳐서 그 에너지를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그 에너지를 발산하게 해주지 못한다. 욕구는 눌리고, 다른 방식으로 풀게 된다. 얘너나 프로그램은 자신이 신뢰하는 누군가를 같이 데려올 수 있는 곳이다.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친구가 좀 노는 친구를 잘못 만나서 잘 못된 길을 걸어갔단 많은 얘기들었다. 뭐 잘나가던 아이가 잘 안된 케이스만 많다. 하지만 반대로 좀 노는 친구가 가자고 해서 왔던 그 인연이 그를 어떤 삶으로 이끌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나가는 케이스들도 좀 노는 친구에게서 나올 수 있다. 확산력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얘너나는 그 자체로 강점이 있다. 하기 싫어서 멈추고 싶어도 진행되어 갈 것 같다. 경제든 사회문제든 욕망 자체는 수요를 만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