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市人 하승창 “내가 만드는 사회”


10/15 하자 작업장 학교

@오크 @Seira @el

 

그날 강의를 메모해 놓고, 한참이나 있다가 쓴다. 사실은 알아보고 싶은게 많이 있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정리를 좀 할 수 있게 되었다.(오늘이 벌써 3일이 지난 후에야 공개?) 좀 늦게 도착한 오크가 학원을 째고 왔다고 집에 가면 아버지한테 혼날꺼라면서, 떡하니 거꾸로 희망이다란 책을 꺼내어 놓길래 뭔가 하고 보고 있었는데, 땀도 옆에서 그 책을 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내가 만나는 10대는 힘이 느껴진다. 시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내가 주워듣기 시작했다.

 

환대하기


Festeza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들썩들썩 혼자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보니 하승창 선생님도 어깨를 들썩들썩 하면서 리듬을 타고 계시는게 아닌가,,, 작업장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강연을 하는 누군가를 환영하는 모습은 새로운 에너지를 강연자에게 주는 것 같다. 내가 겪어왔던 수많은 강연들은 자 강연비를 드리고 모셨으니, 오늘 좀 신선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주시겠지?(욕심)’하는 눈빛을 가진 청강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야기를 해주러 오신 분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거나, 말할 때 혹여나 실수를 하시는 부분을 너그럽게 박수로 응원해주는 강연은 별로 없었다.

 

노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살아서 나는 몸치라서…”라고 얘기하시는 걸로 보아 하승창 선생님도 환영해주는 Festeza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싶으셨나 보다.

 

Unsafe at any Speed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

 

처음 시작하신 자동차의 안전띠는 언제 생겼을까?” 에 관한 Ralph Nader(링크)의 이야기는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시민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랄프 레이더라고 필기를 적어놓고선 한참 찾았는데, 찾고나니 네이더가 맞다. 게다가 75년도로 나와있는 그의 사진은 꽤나 훈남이다. 그의 이력을 찾아보다가 재밌는 것들을 많이 찾았다.

 

하승창 선생님이 얘기하신 이야기와 더불어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Unsafe at any Speed) 의 책(링크)에는 꽤 재밌는 얘기들이 많았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튜닝을 하다보면 크롬도금을 하게 되는데, 이건 은색보다 더 반짝반짝하는 색으로 휠이나 프레임을 도금한다. 근데 그 당시 오픈카에는 현재의 속도계와 에어컨조절기 등이 있는 Dashboard를 크롬으로 도색했다고 한다. 아마 석유파동이 있기 전 미국은 황금기였을테니깐애나멜이나 크롬이 직접 눈에 반사되면, 운전중에 속도계를 보다가 눈이 부셔서 사고가 날 가능성도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자동기어의 순서에 있는 P-R-N-D 도 초기에는 P-N-D-L-R 순서로 있었다니,, -_- ;;운전자들이 후진하려다 앞차를 박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모든걸 이 책에서 지적했다니 그는 매우 꼼꼼한 공학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 오염에 대한 지적, 안전 스타일에 대한 것까지 다양하게 정리된 책이다.

하승창 선생님이 얘기했던 “시민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라는 생각을 랄프 네이더는 언제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가 32살 때 출판되었지만 26살 때 The nation지에 냈던 논문이 그 기초가 된다. 25살에 Law school을 졸업했으니, 그가 이런 생각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던건 아마 Law school을 다니기 이전인 20대 초반대가 아니가었을까 한다. 어쩌면 그건 이 이야기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시점이고, 이런저런 불만과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더 어린 10? 상상은 자유니깐

 

랄프 네이더의 주장과 GM의 괴롭힘 그리고 재판 승소와 관련된 일말의 사건들은 90년대에 에어백과 자동차 충돌테스트에 관련된 영향까지 미쳤다고 하니 꽤나 대단하다. 소비자운동과 관련없는 정치 이야기지만 2000, 2004, 2008년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도 매우 유명하신 세번째 대통령 후보였던 사실도 매우 재밌었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650

 

국민, 시민, 세계시민 나는 어떤 시민인가?”

 

녹색교통의 보행권운동,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의 이야기들도 다시 한 번 귀담아 들었지만, 반상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분리수거 운동이 쫙 퍼졌다는 사실을 더 관심있게 들었다. 또 기껏 분리수거를 해서 국가는 쓰레기장 한곳에 버렸다는 이야기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듣고 있었다. 이 제도가 실행된 것은 나도 어렸을 때의 이야기라 다시 찾아보았다. 아래의 기사에서만 보아도, 통별 부녀회장님들의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래도 이때는 아직 운장이네 엄마라고 부르던 마을의 개념이 남아 있을 때라 분리수거, 종량제가 가능했을지는 모른다. 이들은 재활용품을 모아서 다시 마을에 어려운 이들을 돕거나 노인들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어드리는 모습이 남아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아파트 단지에서 이뤄지는 분리수거운동은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패널티에 의한 것 같다.


재활용을 하는 많은 시민들 중에서 만약 아파트에서 부과하는 패널티와 감시 카메라가 없어도 그 활동들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일까? 기후 변화란 것을 직감하고, 탄소사용을 줄이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얼마나 있을까? 기후변화는 너무 큰 얘기라고 치더라도 국가에서 시키면 환경을 지키고, 국가에서 시키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상회라는 타이틀로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누가 시키고, 벌을 주기때문에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버리는 사람들과 이미 그런 시스템과 규칙들을 알고 있기때문에 그냥 하는 사람들과 좀 더 멀리까지 생각하면서 환경운동들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나누어 바라볼지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진행했던 인사동에서의 달맞이 축제 때, 일회용 컵을 쓰지 않겠다고 지장을 찍어서 나무를 만들던 Greening Card 데스크에서 독일인 친구였던 콘레드는, 한국에서 생태운동을 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다. 한국에 온지 2~3년이 넘었는데, 사실 주변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을 처음 만났던 것이다. 얼핏 그의 말투에서 자주보던 행사와 활동들을 오랜만에 만났듯한 밝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자주 보고, 참여하던 행사를 오랫동안 봐오지 못하다가 한국에서 만난듯한 눈치였다. 그는 환경을 생각하는 세계시민일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